형사·사건

기계는 속지 않는다는데, 왜 사기죄일까

사람 없이 ATM만 거친 인출도, 시스템 뒤 '처분권자'를 착오에 빠뜨렸다면 사기죄가 될 수 있다.

읽는 시간 2백창협 변호사 자문

한 마사지업소 운영자가 카카오뱅크 체크카드를 손에 쥐고 ATM 앞에 섰다. 소액을 반복해 뽑고, 그때마다 붙는 수수료 구조를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 사람을 속인 적은 없다. 화면과 기계만 상대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업무방해와 사기죄를 유죄로 봤다. 기계는 속지 않는다는데, 어디서 죄가 생긴 것일까.

'사람을 속였는가'가 출발점이다

사기죄(형법 제347조)는 사람을 속여(기망) 착오에 빠뜨리고, 그 사람이 재산을 처분하게 만드는 범죄다. 핵심은 '사람'과 '착오'다. 대법원은 재산의 변동이 사람의 개입 없이 순전히 기계적·자동적으로 처리되고, 그 과정에 사람을 속이는 요소가 없다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이어 왔다(2019도14960). ATM에서 돈이 나오는 물리적 순간만 떼어 보면, 거기에는 속을 사람이 없다.

대신 이런 경우를 겨냥한 규정이 컴퓨터등사용사기죄다. 허위 정보나 부정한 명령을 입력해 정보처리장치가 잘못된 결과를 내게 만드는 행위를 따로 처벌한다. 즉 '기계만 거친 부정 인출'은 사기죄의 그물이 아니라 다른 그물로 걸러 왔다.

경계는 '시스템 뒤의 사람'에 있다

이번 판단의 무게는 반대쪽 단서에 있다. 대법원은 위 법리를 확인하면서도, 정보처리의 결과를 매개로 결국 처분행위를 하는 사람을 착오에 빠뜨렸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 기계는 통로일 뿐, 그 끝에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재산을 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기망'의 연결고리가 살아난다는 취지다.

결국 갈림길은 화면 뒤에 판단하는 사람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완전 자동이면 사기죄 밖, 사람의 착오가 끼어들면 사기죄 안일 수 있다. 같은 ATM 인출이라도 사실관계에 따라 죄명과 결론이 달라진다.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하나

'기계는 속지 않으니 괜찮다'는 계산은 절반만 맞다. 자동 처리처럼 보여도 그 뒤에서 사람이 결과를 신뢰해 승인·정산·지급을 결정하는 구조라면, 사기죄 성립 가능성이 남는다. 반대로 방어하는 입장이라면 '누가,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믿고 처분했는가'를 사실관계로 쪼개 다투는 것이 핵심이다. 죄명이 사기죄인지 컴퓨터등사용사기죄인지, 업무방해가 함께 묶이는지에 따라 형량과 방어 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기죄#컴퓨터등사용사기#업무방해#대법원판례#형사사건

본 기사는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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