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찍은 합의서, 강박이면 취소된다
공급 중단 압박에 못 이겨 이의 포기 약정을 맺었다면 민법 제110조 강박으로 취소될 여지가 크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 공급 중단 압박에 맺은 이의 포기 약정은 강박으로 취소될 여지가 크다.
- 해악 고지의 위법성과 자유로운 의사 여부가 취소를 가른다.
- 통보 문자·녹취를 시간순으로 남기고 빨리 법률 판단을 받아라.
부품 공급을 끊겠다는 통보 앞에서 도장을 찍었다. 합의금을 건네고, 앞으로 소송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생산 라인이 멈추면 손해가 더 컸기 때문이다. 이 약정은 유효할까, 아니면 뒤집을 수 있을까.
대법원이 연 취소의 문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1월 30일 이 사안(2022다294831)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안산지원으로 돌려보냈다. 현대차·기아의 1차 협력업체가,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2차 협력업체의 압박에 못 이겨 맺은 이의 포기 약정이 문제였다. 대법원은 이를 강박(强迫·상대의 겁박에 눌려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한 의사표시)에 의한 의사표시로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핵심은 '자유로운 의사'였다. 공급망에 묶여 대체가 어려운 상대라면, 공급 중단 통보는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상대의 결정을 좌우하는 위력이 될 수 있다.
강박 취소는 어떤 요건을 따지나
민법 제110조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판례는 통상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고의 ▲위법한 해악의 고지 ▲그로 인한 공포심 ▲공포심에 따른 의사표시라는 흐름을 따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건은 '위법성'이다. 정당한 권리 행사나 통상의 거래 협상은 강박이 아니다. 그러나 정당한 목적을 넘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수단을 동원했다면 위법한 강박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사실심에서 이 요건을 다시 심리하게 됐다. 파기환송은 결론을 못박은 것이 아니라, 강박 여부를 제대로 따져보라는 취지다.
그래서 어떻게
압박에 밀려 합의서에 서명했더라도 곧장 포기할 일은 아니다. 다만 '싫었다'는 감정만으로 취소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어떤 해악을 어떻게 고지했는지, 그 요구가 정당한 권리 범위를 벗어났는지가 갈린다.
실무에서 남는 건 기록이다. 공급 중단 통보 문자·메일, 통화 녹취,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시간순으로 남겨두는 편이 안전하다. 강박 취소권에는 행사 기간 제한이 따르므로, 사인 후에도 되도록 빨리 법률적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유리하다.
자주 묻는 질문
합의서에 도장 찍으면 무조건 유효한가요?
아닙니다. 상대의 위법한 겁박에 눌려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서명했다면 민법 제110조에 따라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싫었다'는 감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공급 중단 통보는 모두 강박이 되나요?
아닙니다. 정당한 권리 행사나 통상의 거래 협상은 강박이 아닙니다. 다만 대체가 어려운 공급망에 묶인 상대에게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공급 중단을 수단으로 동원했다면 위법한 강박이 될 수 있습니다.
강박으로 합의서를 취소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공급 중단 통보 문자·메일, 통화 녹취, 합의에 이른 경위를 시간순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강박 취소권에는 행사 기간 제한이 있으므로 서명 후에도 되도록 빨리 법률적 판단을 받는 것이 유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