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인 줄 알고 현금 전달, 보이스피싱 공범일까
같은 심부름을 해도 처지가 갈리는 이유는 일당이 아니라 쌓인 '의심 신호'의 수다.
- 몰랐다는 주장은 말이 아니라 당시 남은 정황으로 판가름난다.
- 신분을 속이라는 지시와 돈 쪼개 입금이 특히 무겁게 평가된다.
- 대화 기록을 지우지 말고 날짜순으로 모아 조사에 대비해야 한다.
구직 앱에서 본 '서류 전달 알바'. 봉투와 현금을 몇 차례 받아 넘겼을 뿐인데 경찰이 사기 혐의로 출석하라고 한다. 수사기관이 지목한 역할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다. 몰랐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만 그 기준은 본인의 말이 아니라, 일을 구하고 해 나가던 과정에 남은 정황이다. 법원은 그 정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사기를 의심했을지를 따진다.
같은 심부름을 하고도 두 사람의 처지는 갈린다
대학생 A씨가 '법무사 사무소 서류 전달' 공고에 지원했다고 하자. 전화 면접을 보고 근로계약서도 받았으며 일당은 10만 원이었다. 봉투를 한 번 전달한 뒤 고객에게 은행 직원이라 소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자, A씨는 일을 그만두고 경찰에 알렸다.
B씨가 일한 곳은 텔레그램으로만 연락하는 '채권 회수 업체'였다. 건당 대가는 30만~50만 원, 피해자를 만나면 금융회사 직원이라 말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B씨는 받은 현금을 여러 ATM에서 남의 이름으로 나눠 입금했고, 3주 동안 열 번 넘게 했다.
두 사람 모두 몰랐다고 진술한다. A씨의 말은 정황과 맞아떨어져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다. B씨는 같은 말을 해도 믿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사기죄 공동정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둘 다 돈을 받아 건넨 것뿐이다.
딱 한 번만 했는데도 처벌받나요
두 사람을 가른 것은 일당 액수가 아니라 일하는 동안 쌓인 '이상하다'는 신호의 수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주로 이런 정황을 본다. 면접이나 회사 확인 없이 메신저로만 연락했는지, 일에 비해 대가가 지나치게 컸는지, 금융회사 직원인 척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돈을 쪼개 남의 이름으로 입금하게 했는지, 의심스러운 일을 겪고도 계속했는지다.
이 가운데 신분을 속이게 하는 지시와 돈을 쪼개 입금하는 방식이 특히 무겁게 평가된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그런 일을 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횟수가 적은 것은 유리한 정황이지만, 그 한 번에 신분을 속이라는 지시를 따랐다면 한 번만으로도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유리한 정황도 함께 고려된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 경험이 적은 경우, 회사가 실재하는 것처럼 꾸민 서류를 받은 경우가 그렇다. 법원은 보이스피싱이 널리 알려졌다는 사정만으로 고의를 인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처지에서 의심할 수 있었는지를 본다. A씨처럼 첫 신호에서 그만두고 신고한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범행을 알고 가담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법은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을 알았는지를 묻는다
미필적 고의는 사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상관없다며 일을 계속한 마음 상태다. 형법 제13조는 범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를 벌하지 않는다고 정한다. 판례는 범죄가 될 가능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였다면 이 인식이 있다고 보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확신까지는 없었다는 말만으로는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고의가 인정되면 형법 제347조 제1항 사기죄가 적용되고, 법정형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다. 수거책은 피해자를 직접 속이지 않았어도 돈을 받아 가는 일이 범행을 완성한다는 이유로 제30조 공동정범으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다. 범행을 돕는 데 그쳤다고 인정되면 제32조 방조범이 되고, 형은 정범보다 반드시 감경된다.
봉투에 현금이 든 줄 몰랐다는 주장은 성격이 다르다.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고 서류 전달이라는 설명과 어긋나는 사정도 없었다면, 가담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이 된다. 다만 직접 지폐를 세어 입금했다면 이 주장은 서기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 첫 조사 전에 기록부터 챙긴다
몰랐다는 주장을 받쳐 주는 것은 그때의 기록이다. 채용 공고와 메신저 대화에는 어떤 설명과 지시를 받았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은 그날의 사정을 날짜와 함께 보여 준다. 경찰 연락을 받은 뒤 대화방을 나가거나 지우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지운 대화는 속았다는 사정을 보여 줄 기회까지 함께 없앤다. 조직이 할 말을 정해 주거나 계정을 지우라고 연락해 오기도 하는데, 그 지시를 따르면 조직과 손발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조사 일시는 수사준칙상 협의 대상이므로, 변호인과 함께 가려면 날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피의자신문에는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신문 전 진술거부권을 고지받는다(제244조의3).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추측으로 채우면, 나중에 복원된 대화와 어긋날 때 진술 전체가 흔들린다. 현장에서 체포됐다면 시간표는 짧다.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석방해야 한다(제200조의2 제5항).
연락받은 날부터 조사일까지 남은 날을 세어 보고, 그사이 대화 기록을 날짜순으로 모아 둘 수 있을지 가늠해 보면 된다. 그렇게 모은 기록이, 그때의 내가 A씨와 B씨 가운데 어느 쪽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자주 묻는 질문
현금 대신 체크카드나 통장을 넘겼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 경우 사기보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대여 금지 위반이 먼저 문제 됩니다. 이 죄는 카드를 넘기거나 대가를 받고 빌려준 행위 자체를 처벌하기 때문에, 카드가 어디에 쓰일지 몰랐다는 사정은 현금 수거 사건에서만큼 방어가 되지 않습니다.
형사에서 몰랐다고 인정받으면 돈은 안 물어줘도 되나요
형사의 고의와 민사 책임은 따로 판단됩니다.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를 도운 사람을 공동행위자로 보고, 주의했으면 알 수 있었던 과실로 도운 때에도 책임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임 범위는 사정에 따라 줄어들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합의하자는데 조직 전체 피해액을 요구합니다
본인이 어느 피해자의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확정되기 전이라면 바로 응하지 말고 확정을 기다리는 편이 낫습니다. 다른 수거책이 받은 돈까지 한꺼번에 청구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합의서에 범행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들어가면 몰랐다는 주장과 부딪히므로 문구를 따로 다듬어야 합니다.
Sources
- 알바인 줄 알고 현금만 전달했는데 보이스피싱 공범이라고 합니다법무법인 그날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