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포기'했는데 빚 떠안았다, 왜?
상속포기 심판을 받아도 유산에 손대면 단순승인으로 뒤집혀 채무를 갚아야 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남긴 것은 예금 얼마와, 그보다 훨씬 많은 빚이었다. 자녀는 서둘러 가정법원에 상속포기를 신고했고 수리 심판까지 받았다. 이제 아버지의 채무와는 무관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사이 아버지 계좌에 남아 있던 돈을 생활비로 써버린 것이 문제가 됐다. 법원은 그 자녀에게 아버지의 생전 빚을 갚으라고 판단했다.
심판 '수리'는 면죄부가 아니다
상속포기는 신고하고 법원이 수리하면 끝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절차의 완료와 효력의 유지는 별개다. 상속인이 상속재산의 전부나 일부를 임의로 처분하거나 소비하면, 민법은 이를 두고 상속을 단순승인(재산도 빚도 모두 물려받겠다는 의사)한 것으로 본다. 이른바 법정단순승인이다.
핵심은 '내 것이 아닌 재산을 마치 내 것처럼 썼다'는 행위 자체다. 포기 의사를 밝혔더라도 유산을 생활비로 소비한 순간, 그 행위가 승인의 의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판단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심판이 수리됐더라도 사망 후 상속재산을 임의로 소비했다면 단순승인으로 보아 피상속인의 채무를 변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처분'인가
관건은 어떤 행위가 상속재산의 처분·소비에 해당하느냐다. 예금을 인출해 자신의 생활비로 쓰는 것은 전형적인 소비로 볼 여지가 크다. 반면 장례비처럼 성질상 필요한 지출까지 일률적으로 처분으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무엇에, 어떤 명목으로, 어느 시점에 썼는지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그래서 어떻게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고려한다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피상속인의 재산에 손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예금 인출, 부동산 처분, 보험금 수령 후 임의 사용은 피한다. 부득이하게 장례비 등을 지출해야 한다면 용도·금액·증빙을 남겨 둔다. 이미 재산을 쓴 상태라면 포기가 그대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신고 전에 전문가와 상담해 단순승인·한정승인·포기 중 어느 길이 유리한지 점검하는 편이 낫다.
본 기사는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